아드리안 골즈위디/백석윤 옮김, 루비박스, 2007년 12월고대 로마는 제국(empire)이라는 말을 있게 한 국가다. 서양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장 오랫동안 영위했다. 오늘날의 서유럽 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 이집트, 팔레스타인을 넘어 메소포타미아까지 지배했고, 당시로서는 다른 국가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인 5,000만명의 다양한 인종의 주민들이 어울려 살았다.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한 때는 멀리로는 저 유명한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지중해 일대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한 시기로부터 볼 수 있지만, 카이사르의 등장을 전후한 시기에 술라, 킨나, 마이우스, 폼페이우스 등 당대의 영웅들이 에스파니아와 북아프리카에서의 지배를 공고히 하고, 오리엔트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시기, 결정적으로는 카이사르가 갈리아라고 일컬어지던 서유럽을 정복한 때로부터라고 보아야 한다.
'카이사르가 유럽을 만들었다'는 말처럼 오늘날 유럽인들 - 따라서, 북미와 오세아니아까지 - 은 어떤 의미로든지 카이사르로부터 시작되었다.
반면, 자신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1대 황제로 일컬어지지만, 실질적으로 제국은 카이사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의 원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카이사르가 살았던 시기는 역사적으로도 로마제국에 있어서 가장 사료가 풍부한 시대이다. '변호사의 아버지' 키케로가 수많은 저작, 서간문으로 당시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불과 100년 후의 플루타르코스까지 훌륭한 저술들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카이사르 자신이 [갈리아 정복기], [내전기]를 집필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이사르의 출생과 죽음까지 대목마다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 역사가들끼리의 현학적 논쟁은 있을 망정 - 카이사르가 갈리아의 영웅 베르킨게토릭스와 싸울 때 우익에 어느 장군을 배치했나 따위의 - 대강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거의 이론 없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 위기의 로마를 구하기 위해서는 공화정은 불가능하므로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는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 공화국을 구하기 위한 데키무스 부르투스, 마르쿠스 부르투스의 충정 때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로마사 연구의 최고 권위 에드워드 기번 이래 아직까지 그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전쟁사를 가르치는 역사학 교수이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이 틀림없이 있겠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이 책에서는 그것을 강요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각종의 사료를 동원하여 객관적으로 담담히 서술한다.
그래서인지 시오노 나나미류의 상상력이 결합되지도 않아서 무미건조하다. 등장 인물은 대화도 없고 그저 설명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술술 잘 읽힌다. 번역본이 85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영웅적인 카이사르의 모습만을 보았다면, 이 책에서 객곽적인 그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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